환상적인 기억
비니거샐러드맛
우즈베키스탄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 입시를 위해 한국에 돌아왔을 때의 기억이다. 지낼 곳이 없어 경기도 광주의 이모네서 한동안 신세를 졌다. 이모네 집은 7차선 대로를 타고 가다 산 쪽으로 도로가 갈라져 나와 단지를 이룬 아파트였다. 그 진입로 초입에 상가가 하나 있었다. 서울로 학원에 다닐 때라, 집으로 올라가는 길에 자주 그곳에 들렀다. 그 무렵 내가 찾던 것은 하나, "가루비 포테이토칩". 콘소메펀치맛, 새우마요네즈맛 그리고 비니거샐러드맛이 있었는데, 선택은 그날의 기분에 따라 달라졌다.
콘소메펀치맛은 진한 감자 맛으로 회사가 "기본맛"으로 내세울 만한 맛이었다. 새우마요네즈맛은 이름 그대로였다. 새우 맛에 기름진 소스가 더해진, 이름값을 하는 맛. 더 많은 자극이 필요한 날엔 어김없이 이걸 집었다. 비니거샐러드는 자주 선택되지는 않았다. 비율로 따지면 4:4:2 정도? 그런데 입을 오므리게 하는 시큼한 첫맛과 뒤따르는 단맛은 꽤 중독적이어서 그 비율이 유지되었다. 첫맛의 강렬함 때문에 한 조각씩 음미하며 먹는 게 좋았다. 그래서 여유가 있는 날에는 자주 비니거샐러드맛을 골랐다.
곧 나는 서울의 다른 가게에서 이 감자칩을 찾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더군다나 이모네 슈퍼에서도 헛탕을 치는 날이 점차 많아졌다. 매대가 빈 날은 실망스러운 마음을 안고 집에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부터 그 자리에 다른 과자가 진열되기 시작했다. 아쉬움에 몇 번 다시 방문해 보았지만 가루비가 다시 채워지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가루비 포테이토칩은 내 인생에서 사라졌다. 그 후 나는 대학에 합격하고 우리 가족은 잠실에 집을 마련했다. 대학에 다니고 군대를 마치는 동안 그 감자칩을 종종 떠올렸고 주변에 물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가루비 포테이토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참 뒤에야 나는 가루비가 일본의 제과회사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허니버터칩이 유행하던 때 봉지 우상단의 'Calbee'라는 이름에 이끌려 인터넷을 뒤져보았다. 한국 가루비는 생각보다 긴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1991년 일본 가루비와 합작으로 해태가루비가 만들어졌다. 가루비 포테이토칩은 2003년에 발매되어 2010년 한때 단종되었다가, 14년 만인 2024년 3월에 재출시되었다. 2010년은 내가 입시를 준비하던 해로, 가루비 포테이토칩이 내 인생에 등장했다 사라진 해와 일치한다.
사진도 찾아냈다. 흐릿한 몇 장뿐이었지만, 반가운 그림이었다. 우하단에 적힌 가격은 1000원(싸다!). 콘소메맛 포장지는 노란색이고 새우마요네즈맛은 금색이다. 제과 제품치고는 낯선 배색이지만 그 앞에 그려진, 마요네즈가 올려진 새우와 썩 잘 어울린다. 왼쪽에 "HAITAI"(해태)라는 영어 표기가 있고, Calbee라는 브랜드명은 "가루비 포테이토칩"이라는 제품명으로만 드러나 있다. 2024년 재출시된 제품에는 왼쪽 위에 "해태"가, 그 아래 중앙에는 "Calbee"가 나란히 인쇄되어 있다. 크기는 Calbee가 더 크지만 위치 때문에 두 브랜드의 존재감이 엇비슷하다. 1997년 외환위기로 해태그룹이 부도났고, 이후 회사는 여러 손을 거쳐 팔렸으며, 2011년 다시 일본 가루비와 합작했다고 한다. 이런 변천이 포장지 도안에도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아 흥미롭다.
그런데 구글에서도 네이버에서도 다음에서도 검색해 보았지만 비니거샐러드맛의 흔적만은 찾지 못했다. 일본 가루비의 "프렌치샐러드" 맛 제품만이 검색될 뿐이다. 콘소메펀치도 새우마요네즈도 사진으로 남아 있는데, 비니거샐러드만 없다. 그래서 "비니거샐러드맛"은 사실 어디서도 확인할 수 없는, 내 기억 속의 이름일 뿐이다. 그 맛이 정말 이 과자의 것이었을까? 어쩌면 언젠가 다른 데서 먹은 어떤 샐러드맛을, 기억이 슬그머니 이 자리에 옮겨다 붙인 건지도 모른다. 이렇게 한번 의심이 들고 나니, 어디까지가 실제로 있었던 일이고 어디부터가 환상인지 가늠할 수 없게 되었다.
5번째 계절
잠에서 깨자마자 바짝 마른 코의 통증을 느낀다. 좁은 창 너머 들어온 햇빛이 마룻바닥에 반사돼 온 방안이 살구빛이다. 지나치게 건조한 공기를 흡입하다 보면 공기에도 무게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한여름 타쉬켄트의 공기는 가볍고 깨끗하다.
그 계절은 이 지독한 여름을 지나 찾아온다. 뜨거운 여름날의 주말. 정오의 태양이 머리 위에 오르면 도로는 비고 사람들은 두꺼운 콘크리트 벽 안에 숨어 속으로 '이 방도 덥긴 하지만 밖은 정말 끔찍해 보이는군' 하며 창밖을 곁눈질한다. 열기가 소리마저 말려버린 듯 거리가 조용하다. 하늘의 푸른 빛이 태양에 질려 허옇게 바랬다. 개는 콘크리트 폐허 아래 숨고 곤충은 울기를 멈춘다. 도로변 화단에서는 스프링클러가 차가운 지하수를 흩뿌리고 있다. 그것이 제공하는 수분과 햇빛이 너무 완전해 귀 기울이면 제 조직을 찢어내는 생장의 소리를 들을 수만 있을 것 같다. 흙은 축축하고 아스팔트는 부드럽다.
그런 날을 보내다 보면 노을 속에서 습기를 느끼는 것으로 사람들의 마음은 자연스레 두근거리게 된다. 바람에 찬 기운이 조금 섞이면, 저녁이 오면, 거리에는 양 구이 냄새가 가득하다. 사람들은 가족과, 연인과 공원을 걷는다. 병콜라와 핫도그를 파는 노점들이 행인을 반긴다. 반짝이는 싸구려 장난감을 든 노점상들이 나무 사이로 어른거린다. 아이들은 번쩍이기도 하고 소리를 내기도 하는 그것들을 들고 즐겁다. 시원한 여름 바람이 목과 오금을 간지럽히고 사람들은 한 해의 가장 좋은 계절이 지나고 있음을 안다.
구름 한 점 없던 저녁 하늘에 때때로 먹구름이 끼기도 한다. 공기가 조금 무거워진다. 그 무게에 눌린 듯 새들은 낮게 낮게 날며 살찐 벌레들을 사냥한다. 나무에 앉은 새들이 점차 많아진다. 가지가 구부러지게 앉아 다들 어딘가 너머를 응시하고 있다. 그러다 어느 날 짤주머니로 올린 듯한 러시아 정교회의 금빛 뚜껑을 배경으로 여름의 끝을 선포하는 군무가 시작된다. 시작도 없이 거대한 보자기 같은 한 무리의 검은 새 떼가 성당을 감싸고 돌기 시작한다. 둘로 갈라져 위로 솟다가 다시 하나로 합쳐 내린다. 기억나지 않는 지지거리는 소리와 함께. 제 모습을 찾는 것처럼 뭉쳤다가 흩어졌다가 시시각각으로 형태를 바꾼다. 날이 진다. 지친 새들이 부분으로 떨어져 나와 한 무리씩 교회 안뜰 가로수에 내려앉는다. 하루의 춤이 끝나고 새들은 휴식한다. 그렇게 군무는 이어지는 며칠 동안 반복되다 시작할 때 그랬던 것처럼 조짐 없이 끝난다.
계절이 끝나는 풍경을 나는 식탁에 앉아 바라보고 있다. 식당은 벽을 두른 발코니 공간으로 남쪽을 향한 긴 창이 성당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이고 있다. 탁 트인 식당과 달리 연식이 꽤 되는 그 아파트의 다른 창밖에는 두꺼운 X자 콘크리트 블록 같은 것이 덧대어져 있어 한여름에 대한 경계가 느껴진다. 아파트 외벽은 두껍고 벽면을 따라서는 두 아름은 됨직한 거대한 가로수를 심어 보행 통로를 제공하는 동시에 집을 여름 태양으로부터 보호하고 있다.
어느 날 잠에서 깼는데 방 안이 색 없이 밝다. 창밖을 보니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게 안개가 자욱하다. 식당에 나가보니 성당도 6차선 도로도 가로수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는 해가 어느 방향에서 비추고 있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창밖의 풍경은 균일하게 빛을 산란하는 두꺼운 뭉치로 변모해 있었다. 풍경과 함께 위치 감각이 사라져 아파트가 하늘로 솟은 것인지 물속에 잠긴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세상이 눈앞에서 사라지자 집은 세상에서 경계 그은 곳이 아니라 분리된, 완전히 침범 받지 않는 안쪽이었다.
그 계절은 단지 며칠 동안만 계속되었다. 어쩌면 일주일 동안. 창밖은 내내 그대로였다. 방학을 보내던 나는 그 기간 동안 한 번도 집을 나가지 않았다. 딱히 할 일도 없었다. 책을 들고 집 안을 어슬렁거리거나, 때때로 창밖을 보며 그 신비로운 이격감을 느끼는 게 전부였다. 밤이 오면 주황빛 푸른빛 가로등 광원이 커다란 빛의 구가 되어 안개 안에 점점이 박혔다. 그 뒤에 숨어 자연은 새로운 모습으로 탈피하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에 깨어보니 안개는 개고 가로수 이파리들은 물들어 있었다.
환상적인 기억
선댄스채널
군 복무 중일 때 뭐 볼 거 없나 모로 누워 채널을 100번대 넘어 돌리다가 그 채널을 발견했다. 여덟이었나 여섯이었나, 함께 쓰는 생활관이라 채널을 보는 게 쉽지는 않았다. 유혈이 낭자하지도, 아이돌이 나오지도 않는 채널을 다른 인원들은 당연히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도 주말과 같은 때 모두가 축구를 하러 나가거나 싸지방이나 오락실로 해산해 방이 빌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럴 때면 혼자 생활관에 남아 그 채널이 보여주는 영화를 시청하곤 했다.
채널은 다큐와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동시대 인디 영화들, 그리고 흑백 영화까지는 아니지만 널리 알려지지 않은 연식 있는 영화들을 틀어주었다. 제목을 기억하지는 못했지만 알고 있는 얼굴들이 등장해 뒤늦게나마 추적해본 영화 두 편은 다음과 같다:
Happy Accidents(2000)
뉴욕에서 번번이 연애에 실패해온 루비는 공원에서 샘이라는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어느 날 샘이 고백한다 - 자신은 2470년에서 그녀를 만나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온 여행자라고. 루비는 처음엔 또 한 명의 이상한 남자를 만났다 여기고, 끝내 그를 자신의 상담사에게까지 데려간다. 영화의 묘미는 여기에 있다. 샘이 정말 미래에서 온 것인지, 아니면 망상증 환자인지 - 영화는 그 판단의 단서를 루비에게도, 관객에게도 똑같이 흘리고 거둬들이기를 반복한다. 그래서 보는 사람은 루비와 나란히 같은 혼란을 통과하게 된다. (<지구를 지켜라>가 외계인을 안다고 주장하는 주인공을 두고 관객을 몰아넣던 것처럼) <맨 인 블랙>에서 인간 가죽을 뒤집어쓴 바퀴벌레 외계인으로 강렬했던 빈센트 도노프리오가 그 종잡을 수 없는 남자를, 최근 <스파이더맨>의 메이 숙모로 익숙한 마리사 토메이가 그를 믿을지 말지 흔들리는 여자를 연기했다.
My Life So Far(1999)
1920년대 스코틀랜드, 킬로란이라는 대저택에서 자라는 열 살 소년 프레이저의 눈으로 영화가 흘러간다. 발명가를 자처하지만 번번이 실패하는 철부지 아버지, 집안을 쥐고 흔드는 외할머니, 그리고 런던에서 찾아온 외삼촌이 데려온 젊은 프랑스 약혼녀를 두고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매혹되며 가족의 긴장이 불거진다. 어른들의 세계를 다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의 시선이라, 정작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보는 사람이 아이보다 먼저 눈치챈다. 그런데 내게 더 인상 깊었던 건 줄거리보다 배경 쪽이었다. 겨울 호수에서 컬링을 하던 장면이라든가, 물이끼로 상처 치료제를 만든다는 그 엉뚱한 저택의 살림이라든가 - 작위는 없지만 성 같은 집에 여러 세대가 하인들과 함께 모여 사는, 두 전쟁 사이의 이제는 없을 것 같은 목가적인 생활. 스코틀랜드 아가일 지방의 호수와 언덕이 매 장면 배경에 깔린다. 아버지 역은 이후 <브리짓 존스의 일기>로 한국에 널리 알려질 콜린 퍼스가 맡았다.
나머지 기억은 너무 흐리다. 아는 얼굴이 없어서일까 영화가 별로여서였을까. 군대를 나와서 채널을 시청한 적이 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집에도 TV가 있었지만 유료 상품에 가입이 안 되어 있었을 수 있다. 아니면 학교에 정신이 팔려서 볼 틈이 없었을지도. 아무것도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언젠가 다시 보고 싶어 1번부터 끝까지 채널을 돌려보고도 찾아내지 못했고, 인터넷 검색으로 채널 송출이 중단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오늘 다시 찾아보니 2010년에 첫 송출이 있었고 2017년에 송출이 중단되었다고 한다. 2015년쯤 군 생활을 했으니 얼마 후 볼 수 없는 채널이 된 것이다. 그 후 TV 볼 기회가 있으면 자주 영화 채널을 틀어놓곤 했다. 하지만 그런 영화는 다시 볼 수 없었다.
공상과 망상 1호